종합자료실
 
고성군청과 25년 계속된 내땅 찾기(上)
관리자
10-11-08        8,550  
강원도 고성의 3만여평에 달하는 임야가 작고한 자신의 부친 소유라고 주장하는 홍광식씨(61세)의 땅 찾기 위한 노력이 25년째 계속되고 있다. 홍 씨는 강원도 고성 군청이 부친 소유를 증명할 수 있는 원본을 은닉한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고 있다.

홍 씨는 지난 80년대 군청 일부 직원들이 개입해 이 땅을 차지하려고 각종 공문서를 위변조 한후 무주부동산으로 만든 후 사취하려다 민원인의 민원제기로 문제가 될것 같자 이 땅을 군청자산으로 만들면서 문제가 복잡하게 꼬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광씩 주장 내땅...'고성군 3만평은 어떤땅?'
 
홍광식씨가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땅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산1-1임야 약 3만평으로 현 삼포리 봉수대 해수욕장의 2/3 가량을 차지하는 땅이다. 이 땅은 당초 약 5만평으로 산1번지에서 1-1, 1-2, 1-3번지로 분할이 되어 1-2번지는 군 초소등을 만들어 국방부 소유로, 그리고 1-3 1-4번지의 땅은 도로부지로 편입되어 남아있는 것이 바로 산1-1번지 인것. 
 
지난 90년 작고한 홍 씨의 아버지인 홍순익씨는 지난 1986년 경찰서 조사당시 이 땅을 자신이 전 소유자인 김형식으로부터 매수하게된 경위에 대해 "저는 주문진에서 배를 가지고 있으면서 원산까지 드나들면서 수산업을 하였으며 김형식은 씨름 선수여서 주문진에 자주 왔다갔다 하였는데 그때 만나서 이를 사게되었다"고 진술한바 있다.
 
홍순익씨가 이 땅을 샀다고 주장하는 시기는 1945년 해방직전이었다. 이 땅을 당시 김형식으로부터 매수한후 양양등기소에 등기까지 마쳤는데 문제는 6.25전쟁으로 등기소가 폭격으로 불타면서 일체의 서류가 사라졌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매매계약서도 난리통에 없어졌다는 것. 
 
홍순익씨는 매매계약과 관련 당시 자신이 땅을 살때 "'김창선'이라는 사람이 하는 식당에서 매매가 이루어졌는데 그는 죽었지만 그의 형인 김익신이가 그 무렵 동생집에 있어서 이를 보아서 알고있다"고 진술한바 있다. 
 
홍 씨는 이후 이땅을 지난 1964년경 "저의 동생이 6.25사변때 군인으로 전사하여 전사금이 나와 이를 합하여 약 200만원 가량을 들여서 개간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와 관련 홍광식씨는 "1964년 고성군으로부터 사유지자력에 의한 농지개간을 허가받아 5만평중 약4정보의 논을 개간하였다"고 설명했다.
 
사유지자력에 의한 농지개간은 농지소유자가 자신의 비용을 들여 개간하겠다는 신청을 군에 접수하고 이를 허가받아 개간을 시행하는 거였다. 이때 당시 작고한 홍순식씨는 약 4정보 즉 1,2000여평을 논으로 일궈냈다는 것.
 
이 부부과 관련 홍광식씨는 "시간당 사용료 3,500원을 지불해야 하는 불도저를 포함 2개월간의 개간공사를 위하여 투자된 돈은 2백만원이 넘었다", "당시 화폐개혁(1961년) 직후여서 현금이 귀하였던 점과 쌀 1말에 250원 이었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돈을 쏟아붓다시피 한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순익씨는 당시 투입된 자금과 관련 지난 1986년 경찰조사에서 "저가 그 땅을 개간할때 저의 동생(홍순권)이 6.25사변때 전사하여 전사금이 나와 이를 합하여 약200만원 가량을 들여서 개간한 것이다.", "개간을 할때 서울사람들이 와서 평당 11원을 준다고 하였는데 거절하였다"며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한바 있다.   
 
홍순식 땅은 어떻게 무주 부동산으로 되었는가
 
홍순익씨가 자신의 주장처럼 1964년 개간을 한후 직접 경작하거나 지역에 거주하면서 관리를 계속했다면 법률적인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홍 씨는 농사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고 이 땅을 삼포리 주민 고 박학기씨와 함께 1964년도에는 함께 지은후 1965년 경부터는 경작과 토지관리를 전적으로 박 씨에게 맡겼다.
 
박 씨에게 소작을 맡긴 홍 씨는 경남 통영으로 어선을 가지고 수산업에 종사했다. 이후 홍 씨는 경남 통영에서 어업활동을 하던 중 사업의 실패와 교통사고로 가정경제가 파탄에 이르러 당장에 강원도로 돌아올 수 없는 사이에 2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런 가운데 토지소유권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1985년경 고성으로 돌아온 홍 씨가 자신의 땅을 등기하고자 하였으나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등기권리증이나 기타 증빙서류가 전무한 관계로 벽에 부딪혔다. 홍 씨는 전 소유주인 김형식씨의 자식들을 찾아가 협조를 부탁했다.
 
홍 씨로 부터 이 땅을 등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협조를 부탁받은 김형식씨의 딸 김 아무개등은 내용을 알아본 후 홍 씨에게 서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오히려 자신들이 이땅의 소유자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홍 씨가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었던 것이지 매매한 사실이 없다'며 증인들을 내세워 '임야소유권확인'소송을 제기했던것. 이에 대해 홍 씨는 강력하게 반발하며 민.형사상으로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홍 씨는 1986년 고소인 조사에서 이 과정을 이렇게 진술한바 있다. "1985년 7월 말경에 저의 집에 와서 그 토지의 내력이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서 사실 그 동안의 이야기를 다해줬더니 이걸 듣고서 '다 좋은데 서류가 없어서 탈이구나'하고 나간 사람이다"
 
"그후에 또 찾아와서 그러지 말고 김00와 둘이서 땅을 나누어 먹으라고 하여 저가 이 나쁜놈아 그 땅을 내가 어떻게 산 땅이며 어떤 돈으로 개간을 한 땅인데 그 따위 소리를 하느냐며 되돌려 보냈다"고 진술하는등 구체적인 진술을 했었다.
  
당시 홍순익 씨는 김 씨 유족측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독립당사자 자격으로 재판에 참여하였지만 4년여간 치열하게 전개된 재판에서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이 땅이 김 씨 유족의 땅도 아니고 홍 씨의 땅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홍 씨는 자신의 땅임을 주장할 수 있는 당시 죽왕면 개간 담당 공무원등 수 많은 증인들을 내세웠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 고성군 농산계장으로 1961년 2월경 부터 1965년 6월경 까지 근무하면서 개간업무를 담당했던 금기홍 씨는 1986년 11월 법정 증언을 통해 "개인소유 자력개간 허가의 절차 규정에 따라 홍순익 개인소유를 개간한다는 공고를 2개월간 공고하고 그 공고기간중 아무 이의 없이 기간이 끝나서 개인소유를 인정하였다"고 증언한바 있다.
 
또 1960년부터 5년간 군청 농산계 지적측량기사로 근무했던 이향욱씨는 같은해 10월 열린 법정증언에서 "홍순익이 전답으로 자력 개간하겠다는 개간허가 신청을 고성군 죽왕면장에게 제출한 것을 알고 있다", "개간하는 것을 보고 홍순익에게 매도해라 내가 서울 사람에게 소개해서 매도하도록 하겠다", "위 임야가 홍순익 소유라는 개인소유 확인을 해서 자력개간 허가 신청서에 첨부 제출한 것을 직접 보았다"며 구체적으로 증언한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증언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이 땅이 홍 씨의 땅이라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면서 소유권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홍광식 씨는 패소가 불가피했던 이유에 대해 "첫째 홍순익의 소유권을 입증할 문서(군청보관용 개발농지실태조사대장)을 고성군이 은닉했다", "둘째, 홍순익의 명의를 누락해 놓은 개간허가 대장을 고성군측이 법정에 제출함으로싸 법원으로부터 소유권의 불인정은 불가피했다"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중이다.

고성군청 불법적 행위 본격적으로 시작돼
 
이 과정까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사연일듯 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재판이 종료된 직후 고성군의 잘못으로 문제가 점점 꼬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시작은 바로 국가에서 6.25 전란으로 등기를 못하고 있는 미등기토지에 대한 법적권리를 구제하기 위한 특별조치법을 1983부터 1991년 사이에 시행하면서 부터였다.
 
1991년도에 들어서 홍순익씨도 자신의 땅임을 주장하면서 권리구제신청을 하였지만 기각당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홍 씨의 신청에 대해 고성군의 기각은 많은 무리한 점이 있었다. 
 
홍 씨의 신청에 의해 군청은 2개월 간에 걸쳐 공고를 실시했고 이 기간에 그 어떤 이의도 접수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행정절차를 거친다면 당연히 홍 씨의 접수를 받아들여 소유권을 인정해줬어야 했다. 하지만 고성군청은 정상적인 행정절차를 무시했다.
 
즉 1991년 홍 씨의 신청에 의해 고성군은 관보등을 통해 1991년 2월~3월까지 2개월간 이의를 접수한다는 고시를 한바 있다. 당연히 이 기간 동안 그 어떤 이의도 접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고성군은 공고기간이 7개월이나 경과한 시점에서 소송당시의 지적계장 정 아무개의 말을 믿은 일부 주민들이 이의서를 12월 9일 접수했고 군청은 14일자로 기각처리했다. 이에 앞서 고성군청 당시 지적계장 정 아무개는 주민들에게 "이 땅이 군유지가 되면 해수욕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관리권을 마을에 주겠다"며 주민들을 설득한바 있다.
 
이에 대해 홍광식 씨는 "바로 이점에 고성군의 위법행위가 드러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의신청한 마을주민들은 이해관계인이 아닌 제3자임에도 이들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이의신청을 공고기간 내에 하도록 한 규정을 무시한것은 물론 이의 기간이 7개월이나 경과한 후 제3자들의 근거조차 없는 집단이의를 받아들인 위법을 저지른것"이라며 고성군의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